중국 이야기 2025. 11. 16. 21:32

중국의 고대 4대 미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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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릉왕(兰陵王)은 남북조시대 북제의 고장공(高长恭)으로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며 미모로 유명하다.

난릉왕이란 호칭은 중국 고대(금나라)의 왕작의 호칭으로, 군왕작郡王爵이다.

다른 황조에서도 난릉왕을 봉한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 요나라에서는 난릉왕을 봉한 사람이 15명이나 된다.

여러 난릉왕(兰陵王) 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남북조 시대 북제 종실의 명장. 신무제 고환의 손자이자 문양제 고징의 넷째 아들이며 중국 고대 4대 미남 중의 하나이다.

고장공(541년~573년), 명숙, 효瓘라고도 하며 자는 장공, 발해군 蓨현(현재 허베이성 징현) 출신이다.

고장공은 용모가 아름답고 용맹하며 싸움을 잘하였다.

북제가 건국된 후, 고장공은 난릉왕에 봉해지고 누천하여 자사를 병합했다.

하청 2년(563년), 돌궐이 진양에 침입하자, 고장공은 군대를 이끌고 힘껏 저항하여 돌궐 대군을 격파했다.

하청 3년(564년), 북주가 군대를 보내 낙양을 포위하자, 고장공과 곡률광은 군대를 이끌고 급히 지원하였고, 邙산 전투에서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북주의 포위를 뚫고 김용성을 성공적으로 포위하여 위명을 떨쳤으며, 군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무평 45(서기 573), 황제는 독주를 내려 그의 집으로 보냈다.

당시 난릉왕은 독주를 받고 매우 분개했다.

그는 내가 평생 나라를 위해 무엇을 잘 못 했길래 하늘이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했을까? ”

원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영웅도 마다하지 않고 일부러 자신을 비방했지만, 그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

난릉왕이 죽었을 때 나이는 겨우 31세였다.

난릉왕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북제는 군사적 지주를 잃었다.

4년 후(서기 577), 북제는 북주에 의해 멸망하였고, 북제의 왕실 구성원들은 거의 모두 학살당했다.

역사책에 따르면, 난릉왕은 높은 음색과 용모가 겸비되어 있으며, 전쟁할 때 외모가 너무 아름다워 적을 겁주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매번 전투할 때마다 복면을 쓰고 그 외모를 가렸으며, 그 정도로 외모가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난릉왕묘는 하북성 한단 정남서쪽 60km 지점의 자현성 남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제 신무제 고환의 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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