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009. 8. 18. 22:56

무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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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국여행을 할 때 자주 중국단체 여행객과 동참을 한다.

중국인 관광단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활에 젖어보고 또한 우리나라사람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새롭기 때문이다.

무이산 여행에서 만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나이도 각각이었다.
8살부터 70살 먹은 노인들까지 다양했다.
저녁 5시에 여행사와 약속한대로 광주국제공항으로 나갔다.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가 와서 일일이 같은 팀을 확인하다가 나를 보더니 어디 사람이냐? 고 묻는다.
왜냐하면 비행기 탑승에 거류증(주민증)을 내야하는데 내가 여권을 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의아해한다.
이번 무이산 3박4일 여행에 같이 가는 사람은 모두 36명인데 대부분이 광주시에 사는 사람이고 나 혼자만 외국인이다.
처음이라 서먹서먹한 가운데 비행기에 올라가서 좌석을 찾는데 내 자리에 누가 미리 앉아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옆에 사람이 동행이라서 같이 앉아야 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혼자인 나는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겨 앉아야했다.
혼자인 것에 대한 구박은 호텔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방 배정을 받을 때 혼자인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자야했는데 같이 자는 사람이 학생인데 같이 안자고 자기 가족과 자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3일간을 독방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먹는데 원탁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한 동료 중국인들 때문에 나는 가이드와 같이 식사를 하였다.
36명이면 5 테이블을 예약해야 하는데 4 테이블 만 예약을 한 것이다.
가이드가 나에게 미안하다고하면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과를 하는데 같이 온 여행객들도 미안한지 점심부터는 나를 챙기기 시작한다.
나는 8 명이서 함께 온 가족들이 항상 자기들과 같이 움직이자고 하여서 다음부터는 그들과 같이 움직였다.
무이산은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동부지역(우리의 서해바닷가 지역)에는 높은 산이 별로 없다.
상해나 천진 등에서는 서쪽으로 두 시간여를 가도 평야뿐이고 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태산이 우리나라에서 시조에 나오는 대로 “태산이 높다하되...“하고 하늘과 비교를 하였다.
중국은 서쪽이 산악지역이다. 그런데 무이산은 중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중국의 동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중에서 높은 산에 속하며 주봉인 황간산은 2, 400m이다.
무이산은 복건성의 북부 무이산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60평방 킬로미터이다. 예로부터 무이산은 계림산수, 황산의 운해와 더불어 중국 동남부의 명산으로 이름나 있으며, 여름철이면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피서를 즐겼던 곳이다.
무이산은 빼어난 봉우리와 계곡물이 좋기 때문에 三三六六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는 삼삼은 구인데, 이는 아홉 계곡을 말하고, 육육 삼십육은 빼어난 봉우리가 서른여섯 개나 있는 데 이 구곡은 삼보산(三保山)에서 발원하여 성촌(싱춘星村)을 거쳐 무이산으로 흘러 들어와 굽이굽이 흐르는 구곡계곡을 말한다.
무이산 여행 중 백미는 이 九曲을 굵은 죽순대를 7개로 엮은 대나무 뗏목으로 유람하는 것이다. 성촌에서 일곡(이취一曲)까지의 9.5km에 걸친 흐름은 완만하며, 이를 2시간가량 뗏목을 타고 내려가면 산수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무이산 봉우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는 천유봉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천유봉에 오르지 않으면 무이에 왔다고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천유봉은 구곡 유람 시 뗏목에서도 볼 수 있으나 그 준험함을 보려면 직접 걸어서 가 보아야 한다.
무이산 관광은 대체로 이틀이 걸리는데 대나무 뗏목으로 구곡을 유람하는 것과 걸어서 무이산 산속을 유람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첫날은 뗏목으로 그리고 다음날은 걸어서 산 정상을 그리고 산속을 관광하는 것이다.
천유봉 아래는 하나의 칼로 깎아 세운 듯한 거대한 암석 절벽이며 높이가 500여m, 너비가 1000여m이며 넓고 반듯하며 무이산 풍경구 중의 가장 큰 암석이다. 장기간의 빗물에 씻기고 대자연의 도끼로 만들어진 암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내게 한다.
무이산 여행 중 나를 가장 챙기는 가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한정韓靖이라는 8살 된 여자아이가 나를 따랐다.
한꿔라오예!(韓國老爺-한국 할아버지)하면서 따랐는데 한국에 대하여 그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홍콩을 비롯한 중국남부에서 유행하고 있는 한류 중에 대장금이라는 연속극을 그들은 매일 빼놓지 않고 보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 여자아이는 대장금의 장금이가 입었던 한복을 그렇게도 예쁘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의 전통 복 치파오가 더 예쁘지 않느냐?“고하니 아니라고 하면서 한복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가면 한복을 사서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언제 한국을 가느냐?” “부치는데 며칠이나 걸리느냐?” 면서 매일 볼 때마다 묻는다.
나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여서 열흘 안으로 받아볼 것이라고 하니 좋아한다.
그녀의 엄마는 나에게 “한복이 얼마나 되느냐?” 고 하면서 돈을 주겠으니 딸아이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나는 한복 값이 얼마인지도 몰랐지만 그녀의 귀여움 때문에 그냥 사서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 후 나는 그 약속을 지켜서 보냈는데 그녀는 밤이면 매일같이 입고 있으며 자기는 대장금이 아니라 소장금이라고하면서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옷고름을 대충매고 족두리를 하고 찍은 사진을 보니 그런대로 어울렸다.
3박4일 동안 그들과 함께 무이산을 구경하니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것이 하루가 지나고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하니 아직도 중국의 일반사람들의 인심은 순수한맛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한국인이 중국어를 하면서 혼자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지 이것저것 물어오는데 서툰 중국어로 설명을 하자니 그것도 광동 사투리를 못 알아들으면 그중에 배운 사람이 광동어를 다시 보통화로 통역(?)을 하여주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오는데 혼이 났다.
나와함께 잘 다니는 꼬마아이의 가족들은 매일같이 밤마다 나가서 밤참을 먹는데 밤참이아니라 정찬으로 광동 요리를 3박4일가 나는 원 없이 먹었다.
지금도 그들과 헤어 진지 반년이 지났지만 그들에게서는 아직도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으니 나도 중국한류열풍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나는 그들 가족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계속하고 중국광주에 가면 칙사 대접을 받고 있다.

 무이산의 풍경 들

산을 오르기 힘든 사람들은 이것에 앉아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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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배로 무이산 九曲을 차례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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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는 대나무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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