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西安-시안)의 秦始皇 兵馬俑(진시황 병마용)(2-1)
어떤 사람들은 병마용을 병마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용(俑)이란 시체와 함께 매장하는 인형이라는 뜻으로 병마용은 진시황의 무덤 안에 같이 매장한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서 주로 군인(兵)과 말(馬)들의 모양을 하였기 때문에 병마용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제는 병마용이 있는 西安(서안)까지 우리나라에서 직접 가는 비행기가 있고 중국주요 도시에서도 국적기가 있어서 쉽게 갈 수가 있다.
서안에 도착하여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40분 정도 가는데 臨潼 (임동)시 남쪽의 驪(여)산기슭을 지나 華淸池(화청지)에서 10여리 더 가면 진시황 능에 도착하게 된다.
진시황은 23세에 즉위하여 즉시 아방궁과 능을 수축하기 시작했다.
이 방대한 공사는 승상 李斯(이사)가 계획하고 설계하였으며 대장 章邯(장한)이 감독하여 진행되었는데 평민과 인부를 72만 명이나 동원하여 11년간의 시간을 거쳐 수축했다.
그러나 완공되지 못하고 진승․오관의 난이 일어났다. 현재 병마용의 유적은 세 곳이 발견되었다.
1호 유적지는 동서의 길이가 230m이고 남북 길이가 62m이며 면적은 1,462㎡로 근 600여 건의 병마용이 있는데 보병을 위주로 진을 치고 있다.
1976년에는 1호 유적지로 동북으로 20m 떨어진 곳에서 X형의 면적이 600㎡인 2호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100여건의 병마용이 있었으며 기병을 위주로 여러 종류의 군사가 연합으로 편성된 진영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1호 유적의 서북쪽에서 3호 유적지도 발견했다.
3호 유적지는 면적이 520㎡이며 1,2호 유적지의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부로 72명의 무사가 병기를 들고 있는 자세이다. 전체 陣勢(진세)는 지휘자가 앉은 전차를 호위하여 배열되어 있는데 표정, 얼굴주름, 수염의 변화 등으로 인물들의 성격과 지위를 나타내고 있다. 구리로 만들어진 네 필의 말, 정교하게 만들어진 구리마차, 의복을 정제하고 여유롭게 앉아 고삐를 쥐고 마차를 모는 마차부, 이것이 섬서 임동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진귀한 보물인 진나라 銅(동) 마차이다.
병마용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