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천안문사건
내일이면 천안문사건 발생 23주년이 되는 해이다.
해매다 중국의 천안문사건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으르렁 거린다.
이유는 1989년 6월 4일 이곳 광장에서 벌어진 중국의 민주화를 정작 중국정부는 폭도로 여기고 있고 사망 숫자와 부상자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미국에서는 진실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천안문 사건은 1989년 6월 4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중국정부가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천안문 광장에는 주은래의 친필 비문이 새겨있는 영웅기념비가 서있다.
주은래는 당시 중국의 인민들에게는 추앙받는 유망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1989년 6월 3일 모인 곳이 천안문이었다.
아무튼 이날부터 다음날까지 벌어진 6.4.사태는 중국인민들이 정부의 문화혁명을 반대하고 자유를 신봉하자는 반정부 시위였는데 군인들의 폭압으로 이루지 못한 항거였다.
중국인민망에는 당시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月4日凌晨4时半,戒严部队开始对天安门广场实行清场。约5时左右,广场上的学生开始撤离,戒严部队同时进驻天安门广场。至5时半,整个清场过程结束。”
“6월4일 새벽4시반, 계엄부대는 천안문광의 장내를 깨끗이 치우고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약 5시좌우 쯤에 광장에 있던 학생들은 흩어졌고 계엄부대는 동시에 천안문광장에 주둔하였다. 5시 반에 광장은 모두 정리를 마쳤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짧은 시간에 그 수많은 시민들을 진압시켰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젊은 중국인들은 학교에서는 물론 일반들의 입에도 오르지 못하니까 내용을 알지도 못한다.
북경을 여행하는 삶들은 이를 참고하고 가보면 될 것이다.
참고: 얼마전 부터 중국인터넷 및 외국에 적을 둔 뚜어웨이 같은 사이트에서도 곳에서도 천안문과 관련된 사항들은 검색을 할 수 가 없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시위 및 반 공산당 집회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