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가정
얼마전 중국을 갔을때 나는 전에 데리고있던 기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한번 얼굴을 보기위하여서 였다.
그러자 그는 반가워 하면서 집으로 올수있느냐고 하면서 초대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중국서민들의 생활이 보고 싶었었기에 가겠다고 하였다.
그의 집은 북경에서 오래되고 아주 조그만 아파트인데 그들은 항상 떳떳하다.
잘살고 못 사는 것에 대한 수치심은 없는 것 같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우리와 다름이 없지만 가난한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와 덜하다.
그 사람은 한(漢)족인데 부인은 조선족이다. 그러나 한국말을 못하는 조선족이다.
아이는 둘이 있다. 내가 왜 한족은 아이가 하나밖에 가질 수 없는데 넌 둘이냐고 하니 웃으면서 쌍둥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자하나 여자하나 이렇게 둘이다.
중국인은 항상 아이를 한 명만 갖게 되어있다. 이것은 중국의 인구 억제 정책에 따라서이다.
농촌은 예외이고 또 소수민족은 예외이다. 한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그 날 나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과 꽃을 사들고 그의 집을 방문했다.
집에 가니 아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한국 노래 테이프를 틀어주고 기사(남편)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부인은 음식 준비가 다 안 되었다고 하면서 인사만 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집은 중국인 전용 아파트인데 우리나라의 시민아파트의 구조와 같다.
모두 약 10평쯤 되는데 부엌은 복도 쪽에 임시로 설치하였고 화장실은 그래도 조그맣게 샤워시설까지 해 놓았다. 거실 하나와 방이 하나인데 거실에는 방을 꾸며서 부부 침실 겸 거실로 사용하고 방은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쌍둥이가 각각 남자와 여자라서 지금은 문제가 없는데 점점 자라면 한방에 기거를 할 수도 없고 해서 빨리 집을 하나 더 사든가 방이 3개인 곳으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웃으면서 이나마 집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또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가 이 집을 살 때 5만 위안 (당시 환률로 5백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머니가 다니던 회사의 것이라서 현재 거주자가 살 경우에는 회사에서 아주 싸게 분양을 하여준다고 한다.
한번만 둘러 봐도 다 알겠지만 그는 그래도 이곳은 어디고 이곳은 애들 방이고 하면서 집 안내를 한다.
얼마 후 그들은 음식을 내왔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요리를 특별히 만들었고 또 다른 이름도 모를 음식을 여러 가지 만들었는데 접시에다 부인이 계속 이것도 먹어보고 이것도 먹어보라고 하면서 요리 이름과 방법 그리고 재료를 알려준다.
(중국에서 음식을 먹으면 음식점에서 날라다 주면서 의례히 손님에게 음식이름을 말해 주고 또 물어보면 음식 설명을 하여준다)
나는 양이 많아서 천천히 그리고 억지로 조금씩이라도 먹었다. 행여 주인에게 실례가 될까봐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먹었다.
중국인들은 우리도 그렇지만 손님을 일단 초청하면 대접이 극진하다.
더구나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초대받은 사람은 신경을 극도로 써야한다.
항상 중국요리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김치가 있었으면 좀 더 부드럽게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좀 아쉬웠다. 중국전통의 북경요리를 동북요리와 함께 먹으니 맛은 좋았다.
체면을 차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데 계속 부인이 음식을 접시에 놔주고 나는 “됐다”고 하고 이렇게 하기를 한 시간. 오랜 시간이지만 그들 중국인에게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 후식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고 나니 먹는 시간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도 그들은 내가 중국음식을 싫다고 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으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모처럼 그리고 자기회사의 라오반(老板-사장, 주인)이었던 내가 와 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도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두시간만에 그 집을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100위안씩을 주었다.
그들에게는 오늘 같은 날이 즐거운 날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 날이 즐거웠다.
아무 사심이 없이 아무 부끄러움이 없이 예전 사장을 초청하는 그들의 마음씨, 모두가 즐거운 마음뿐이다.
나는 그 후에도 중국을 가면 그들을 만나서 밥도 사주고 가라오케도가고 지금은 택시운전을 하기에 일부러 그의 조그만(우리의 티코만한)택시를 비좁지만 전세를 내서 돌아다니면서 그에 대한 성의를 표하기도 한다.
부디 돈 많이 벌어서 조선족 부인과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
북경의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