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진시황능과 병마용(2-2)
goyoon
2008. 12. 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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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진시황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허수아비들을 순장했는가?
진시황때의 아방궁
멀리서 본 진시황 능
병마용에서 자랑거리 수례
병마용 입구
앞서 말 한대로 용(俑)은 순장하는 인형을 말한다.
은․주시기에 노예의 주인인 귀족들이 죽으면 산사람을 함께 순장했다.
신분과 등급에 따라 순장하는 사람 숫자도 달랐다.
진나라의 국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춘추시기의 진 무공이 처음으로 산사람을 순장했는데 그가 죽은 후 60여명을 순장했다.
서부 변방에서 패권을 잡았던 진나라의 왕 목공이 죽은 후에는 177명이나 순장시켰는데 이 사건은 진나라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후 진 헌공이 즉위한 후 칙령을 내려 순장제도를 폐지시켰다.
순장제도는 폐지시켰으나 노예 주인들이 백성을 도구로 여기는 현상은 변화되지 않았으므로 인형을 대신 순장시키는 성이 흥성하게 된 것이다.
전에는 병마용을 보고 나오면 그 앞에 병마용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노인 다되어서 같이 사진을 한번 찍어 주고는 돈을 받고 있는데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병마용을 구경하고 나오면 길거리에 진시황의 묘가 보이는데 하도 커서 사진을 찍더라도 멀리서 찍어야 전체가 다 나온다.
그래도 사진을 찍어야 기념이 되니 안 찍을 수 가 없다.
진시황의 像진시황때의 아방궁
멀리서 본 진시황 능
병마용에서 자랑거리 수례
병마용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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