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야기

중국의 火葬 風習

goyoon 2008. 12. 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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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례방법에는 매장(埋葬)․회장(回葬)․조장(鳥葬)․화장(火葬) 등이 있다.

회장은 이슬람교도, 조장은 티베트 민족만, 화장은 스님에게만 행했고 백성들의 절대다수가 매장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는 거의 화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화장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74년에 있은 '샤우진좡 배우기' 캠페인이 그 발단이라고 한다.

사우진좡은 천진(天津)시 근교의 한 농촌마을 이름이다. 소문에 의하면 문화혁명당시 마우저둥(毛澤東)의 처 쟝칭(江靑)이 그 마을에 가서 혁명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 문화혁명 속에 포함된 내용 중에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지 말고 화장을 하자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후부터 '샤우진좡 배우기' 운동이 중국 전역을 휩쓸면서 농촌마을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향양원 (向陽院)이라는 것을 세우고 거의 저녁마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혁명화 교육을 하면서 매장문화를 선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그렇게도 화장법을 권장하고 교육을 했으나 주민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자 드디어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이를 강요하게 되었다.

심지어 기존의 무덤을 없애기 위하여 이전에 죽은 사람의 무덤도 파헤치고 묘소를 없애버렸다. 그래서 당시에 조상의 묘를 졸지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낮에 화장터로 실어 가는 흉내를 내고 시체를 딴 곳에 감추어 놓았다가 밤에 몰래 밭이나 산에다 묻어버리고는 하였다.

(벌판이 많은 중국의 묘지를 보면 우리같이 산이 아닌 밭이나 들에 묻는 경우가 많음)

그러다가 밭에 묻었을 때 표시한 표적을 잊어버려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표적이 뚜렷한 고압선 전주 옆에 묻었다가 후에 이장(移葬)하려고 파보니 시 체 위에 다른 시체가 나타나는 현상까지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사람들은 저마다 앞으로는 화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화장 문화가 보편화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죽은 사람을 다시 한 번 불에 태 워 죽일 수는 없다" 는 생각에 모두들 화장을 꺼려왔는데 이런 사람들도 점차 마음이 변하여 1975년부터는 죽을 때는 자기 스스로 화장해 줄 것을 요구했고 마을 사람들도 아무 반대 없이 협력해 나섰다.

그 후부터는 중국의 지도자들도 모두 하나같이 화장을 하여줄 것을 죽기 전에 유언으로 남겨서 주은래를 비롯하여 금세기 중국최고의 지도자 등소평도 화장을 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물론 지금도 시골에서는 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화장 문화로 변하고 있다.

북경에는 시내 중심에서 지하철로 30분 떨어진 곳에 팔보산(八寶山)이라고 있다.

이 팔보산은 산이 아니라 우리의 벽제 화장터나 망우리 공동묘지와 다름이 없는데 화장터 안을 들어가 보면 어마어마하게 잘 꾸며져 있다. 그 옆에는 납골당도 함께 있어서 조문을 아무 때나가도 된다. 또 한 옆에는 우리의 국립묘지 같은 열사들의 묘지인 열사묘가 있어서 유명 인사들과 군인들이 묻혀있고 공원화 되었으며 또 한쪽은 공동묘지도 있는데 납골당과 묘지 안은 가족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중국은 장례 차를 여간해서 볼 수가 없다. 모두들 새벽에 화장터로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활동하는 아침부터는 장례식에 관한 차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장례식장은 이제 점점 서구화되어서 리무진 등으로 운구를 하고 고급화 되어가고 있다.

장례식장에 온 리므진 운구차

북경 팔보산의 화장장 입구

팔보산 혁명군공원묘지입구

혁명군 묘지_우리나라 국립공원묘지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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